구로다 히로키(Hiroki Kuroda)가 자신과 했던 약속을 멋지게 지켰습니다. 구로다는 2007년 메이저리그 다저스 입단 당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今の僕があるのはカープのおかげ。いずれは帰り、恩返ししたい気持ちはある。日本に帰るならカープしかない。帰るなら、バリバリやっている時に帰りたい。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히로시마) 카프 덕분입니다. 언젠가 (히로시마 카프)로 돌아가 보답하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일본에 돌아가면 (히로시마) 카프밖에 없습니다. 돌아간다면 열심히 하고 있을 때 돌아가고 싶습니다.
가난한 구단 히로시마 카프 그리고 작별 인사
엄격히 이야기하면 구로다 히로키는 히로시마 카프에게 그 어떠한 빚을 진 것이 없습니다. 2006년 구로다는 일본 내에 어떠한 구단과 협상을 벌일 수 있는 국내 FA 자격을 얻게 되는 해였습니다
가난한 히로시마 구단은 구로다 히로키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구로다가 포스팅을 원하기만 하면 팀 재정에 도움이 되므로 히로시마 구단은 적극적으로 포스팅에 찬성할 것으로 예상이 되었습니다. 일본 구단은 물론 메이저리그에서도 그를 영입하려는 움직임이 많았습니다.
2006년 후반기 히로시마 카프의 홈 구장인 시민 구장에서 위와 같은 현수막이 춤을 춥니다. 팬들은 자신의 응원팀 히로시마가 그를 잡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기에 그들의 에이스 구로다 히로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이었죠.
我々は共に闘ってきた
今までもこれからも・・・
未来へ輝くその日まで
君が涙を流すなら
君の涙になってやる
CARPのエース 黒田博樹
우리는 함께 싸워 온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
미래에 빛나는 그날까지
네가 눈물을 흘리는 경우
너의 눈물이되어 줄게
CARP의 에이스 구로다 히로키
구로다 히로키의 의협심
이런 히로시마 카프의 팬의 모습에 구로다 히로키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FA 선언을 봉인하고 1년간 카프에서 싸울 것을 약속한 것이죠. 일본인들은 구로다의 이런 결정을 의협심이라고 표현했는데요, 구로다의 의협심에 카프 팬 모두가 감동하였습니다. 그리고 2007년 FA 자격을 취득한 후 구로다 히로키는 FA를 선언했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깁니다.
구로다 히로키 히로시마 카프 시절
"(일본에서) 자신이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고 (히로시마) 카프 상대로 던지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다.
팬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선수라면 그 팀을 옮기는 게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도 사랑받았던 팬과 구단을 상대로 자국 리그에서 던지는 일은 더욱더 힘든 일입니다. 구로다 히로키는 그렇게 다시 돌아 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고 또 카프 팬들은 그의 복귀를 항상 기다려 왔습니다. 카프 구단도 그의 복귀를 위해 언제든지 그가 돌아올 수 있게 그의 등번호 15번을 비워두었습니다.
구로다 히로키와 다저스의 3년간 메이저리그 계약이 끝날 시점 히로시마 카프로 돌아온다는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카프팬은 구로다가 온다는 소문에 한껏 들떠 있었습니다. 하지만 카프팬들의 염원가 다르게 다저스와 1년 연장 계약에 합의합니다. 그리고 팀에 짐이 되지 않기 위해 한해 한해를 불태우기 위해 1년 단위로 계약을 합니다. 단년 계약으로 3년 동안 양키스에서 선수 생활을 해왔습니다.
카프팬들은 구로다의 진정한 의협심을 믿고 있었습니다. 구로다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에, 언젠가 구로다가 히로시마 카프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로다는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많은 이들이 타국리그에서 버림받아 어쩔 수 없이 고국리그로 돌아와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게 아닙니다. 구로다 히로키가 특별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구로다 히로키 LA 다저스 시절
바람 빠진 타이어와 감동적인 복귀
구로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팬으로서 이야기하자면 박찬호가 일본 프로야구를 거치지 않고 한국 프로야구로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박찬호의 목표인 124승을 이룬 뒤 힘이 남아 있을 때 한국리그에서 뛰어주기를 기대했습니다. 최고의 메이저리그 선수였던 박찬호가 일본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박찬호를 열렬히 지지했던 팬으로서 한국에서 뛰기를 원했지만, 박찬호는 국내 복귀를 염원하던 팬들의 바람과 다르게 일본 무대를 선택했어요. 박찬호는 일본에서 실패한 후 바람 빠진 타이어가 된 상태에서 국내에 복귀합니다. 박찬호의 국내 복귀는 다소 억지스러웠고 구로다 같은 감동을 느끼지 못했어요. 하지만 감동의 도가니를 만들어 낸 구로다가 훌륭한 선수라고 칭송하고 또 다저스에서 큰 도움을 받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박찬호 선수였습니다. 대니얼 김은 자신의 SNS에서 아래와 같은 사실을 알렸습니다.
글쓴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의 이야기입니다.
구로다 복귀에 인터넷 여기저기서 감동의 소식들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국내는 물론이고 일본 전역에서 퍼져 나오고 있어요. 유행처럼 구로다의 에피소드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요, 베이스볼젠에서도 구로다 이야기를 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하였습니다. 고민한 이유는 똑같은 스토리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영화에 관심 많은 분도 구로다 이야기고, 일본 문화에 심취한 분도 구로다 이야기입니다. 모두가 구로다 이야기만 하고 있어요. 똑같은 이야기는 하기 싫은데요, 베이스볼젠에서는 일본 야구와 히로시마에 대한 추억을 인연으로 구로다 히로키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구로다 히로키 뉴욕 양키스 시절
일본인 반응
일본에서는 구로다의 결정에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데요, 한결같이 귀결되는 단어는 바로 의협심입니다. 그의 의협심에 대한 찬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에서의 반응은 다음과 같습니다.
카프 팬뿐만 아니라 일본 야구계를 위해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부터 구로다의 일본 복귀로 정말 많은 전화를 받았는데요, 정말 즐거운 비명이라고 할까요?
구로다 히로키 투수의 일본 복귀, 그는 진정한 남자다.
저는 선천적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 팬으로 태어났어요. 마음속으로는 히로시마를 응원하고 있어요. 요미우리와 히로시마가 맞붙으면 요미우리를 응원하지만, 히로시마 팀이나 선수를 알 때마다 "정말 괜찮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구로다의 복귀만으로 올해 오프시즌을 살아갈 수 있다.
구로다 카프로 복귀 뉴스 "무사에 두 말없이" 구로다의 복귀로 많이 분들이 감동하고 있다. 이 일은 도덕 수업에서도 나올법한 일이다. 내년 카프 야구가 매우 재미있을 것이다.
"카프로 돌아갑니다."라는 소식을 듣고 감격스러워서 흥분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장훈: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이다. 39살이지만 아직 현역으로 활약할 수 있는 선수다. 오랜만에 무사를 본 느낌이다.
구로다 히로키의 도전 정신
투수는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데요, 구로다는 2009년 8월 15일 러스티 라이얼(Rusty Ryal)의 라인 드라이브 타구에 머리를 맞아 병원에 긴급 후송되기도 했어요. 러스티 라이얼은 구로다를 상처 입혀 야구를 하고 싶지 않다는 메시지를 보내왔고 구로다는 걱정하지 말고 가슴을 펼 선수가 되길 바란다고 이야기를 남겼다고 합니다. 그 뒤 구로다는 라이너 타구에 대해 무서움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구로다는 팀에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면 자신은 부상을 당해도 좋다고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두려움을 팀의 승리로 승화시켰습니다.
류현진은 새로운 구종 개발에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는데요, 2014년 3월 20일 인터뷰에서 구로다는 새로운 구종 개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깁니다.
구로다 히로키: 올해 2014년은 메이저리그 7번째 시즌입니다. 메이저리그 상대 팀들은 나에 대해 분석을 철저히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찾고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돈보다 신의를 선택 구로다는 다저스가 1600만 달러 (약 19 억 2000 만엔), 파드리스가 1800만 달러 (약 21 억 6000 만엔)를 뿌리쳤습니다. 구로다의 가족은 LA에 있기 때문에 다저스행이 유력시되기도 했어요. 하지만 구로다는 21억 엔 제안을 걷어차고 1/5 정도 금액인 4억 엔에 카프와 계약하며 친정팀에 복귀하였습니다. 구로다는 자신을 키워준 친정팀에 보은하는 마음으로 어려운 결정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구로다는 그의 눈물이 되어주겠다던 팬을 위해 돌아 왔습니다. 에이스 마에다 켄타의 잔류와 구로다의 복귀로 히로시마 카프 팬은 24년 만에 우승을 바라보고 있고 기대감이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히로시마의 야구 열기와 추억
히로시마의 열정적인 야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글쓴이는 해외로 파견 나가 있는 동안 매우 열정적으로 살았습니다. 미친듯이 일했지만, 외로움 때문에 해외에서 사람들과 더 많은 교류를 맺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을 즐기기도 했어요. 그리고 해외 생활에 어느 정도 정착이 될 무렵 다시 한국으로 복귀해야 했어요. 아쉬움이 많았어요. 한국에서의 생활은 너무 무료하기만 했어요. 그러던 중 열흘간 휴가를 받았고 여름 성수기라 갈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었어요. 그래서 언제든지 표를 살 수 있는 부산-후쿠오카 쾌속선으로 발을 돌렸고 그렇게 일본을 여행하기 시작했어요.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온 터라 여행 준비를 제대로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여행 떠나기 하루 전에 일본 가이드북을 사서 공부를 했고 '후쿠오카 - 오사카 - 히로시마' 이 3곳을 방문하기로 했죠. 히로시마에 도착해 일본 전통 다다미방에 짐을 푼 후 좀머 씨처럼 온종일 걸어 다녔습니다. 히로시마는 전차가 지나다니는 낭만적인 도시였고 강이 잘 어우러진 매우 조용한 도시였어요. 히로시마는 원폭 투하로 폐허가 된 곳이라 평화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1
히로시마 돔과 평화를 상징하는 도시 히로시마
도시 전체 지도를 그릴 수 있을 만큼 히로시마 곳곳을 걷어 다녔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작은 규모의 백화점에 들어가 지하 푸드 코트에서 저녁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날따라 히로시마 사람들이 굉장히 분주해 보였습니다. 정말 한적한 도시였는데 그들이 왜 바쁜지 이유를 알 수 없었어요. 출근 시간도 아닌데 그들은 도시락을 들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습니다. 한두 사람이 아니었어요. 정말 많은 사람이 대규모로 어디론가 이동을 하고 있었어요. 저녁 식사 후 딱히 계획이 없던 차에 궁금증을 풀어야 했어요.
궁금증을 풀기 위해 많은 사람이 가는 곳을 따라갔습니다. 백화점 근처에 히로시마 시민구장이 있었고 야구 특유의 환호성이 들려왔습니다. 저녁에 아무런 계획이 없었던 글쓴이에게 야구 경기야말로 일본 야구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죠. 그 당시 1엔에 8원 정도 하던 시절이라 엔화가 한국 돈이랑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는데요, 야구 푯값이 5만 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이승엽이 나오는 경기였다면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히로시마 카프 경기라 고민스러웠어요. 히로시마 카프는 야구를 정말 좋아하던 후배에게도 듣보잡인 그런 구단이었죠. "일본에 그런 구단이 있었어요?" 경기장 주위를 둘러보니 표를 파는 곳마다 가격이 전부 달랐습니다. 제일 안쪽으로 들어가자 가격이 1,500엔 정도였고 주저 없이 표를 끊고 입장하였습니다. 들어가 보니 외야 자유석이더군요.
히로시마 시민 구장 외야석 모습 (1957년~2008년)
히로시마 시민 구장의 시설은 충격적이었어요. 잠시동안 시간 여행을 하는게 아닌가 착각에 빠졌습니다. 여기가 일본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시설이 굉장히 노후했어요. 1950~60년대에 지어진 건물처럼 느껴졌고 외야석은 학교 운동장 스탠드나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까만 흙이 인상적이었고 또 외야에서 보는데도 홈플레이트가 꽤 가깝게 느껴졌어요.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히로시마 카프 팬들의 응원 목소리는 힘차고 활기가 넘쳤습니다. 일본 팬들은 조용하게 응원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다른 건 몰라도 카프 팬들의 열정만큼은 마음속 깊이 느껴졌습니다.
히로시마 옛날구장 좌우 : 91.4m, 좌우중간 : 109.7m 중앙 : 115.8m 펜스 높이 : 2.55m
마산구장 다이노스 좌우 : 97.0m, 좌우중간 : 110.0m 중앙 : 116.0m 펜스 높이 : 3.80m
히로시마 줌줌구장 좌/우 : 101/102m, 좌우중간: 116m, 중앙: 122m 펜스 높이 : 중앙2.5m/ 좌측3.6m/우측3.4m
히로시마 시민구장은 매우 작은 구장이었습니다. 구로다 히로키는 NPB에서 이 작은 구장을 사용했는데요, 11년 동안 103승 89패 3.69 ERA를 기록했어요. 구로다는 MLB에서 7년 동안 79승 79패 3.45 ERA로 NPB보다 오히려 더 좋은 성적을 기록하였습니다.
5회였나요? 6회였나요?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어느 순간 야구장에 형형색색 풍선을 쏘아 올리며 아름다운 색깔로 낡고 허름한 야구장을 물들였습니다. 처음 본 이방인에게 정말 색다른 볼거리였어요. 글쓴이는 히로시마 팬에게 특별함을 느꼈는데요, 그 특별함은 그들의 열정적인 응원도 아니었고 또 풍선 쇼도 아니었어요. 글쓴이 앞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에게서 그 특별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온통 머리가 백발인 할머니는 외야석에서 히로시마 카프 경기를 일행도 없이 혼자 열정적으로 그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일본인이게 야구란 그런 것이었습니다. 아니 히로시마 팬에게 야구란 그런 것이었어요. 구로다 히로키를 둔 히로시마 카프 팬들은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대단한 팬을 가진 구로다 히로키도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백발 할머니가 살아계신다면 외야 어느 한 곳에서 구로다 히로키가 등판하는 경기를 지켜보고 흐뭇해 하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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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어로 Sommer, 여름이라는 뜻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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