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ITCH/fx & STATCAST

범가너, 베일에 쌓인 슬라이더와 커터의 비밀

매디슨 범가너가 월드시리즈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운 이후 그에 대한 칭찬 및 칭송 기사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커쇼와 범가너를 비교하면서 범가너만 찬양하는데 씁쓸함을 금할 수 없네요. 커쇼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던 터라 그만큼 실망도 컸고 커쇼과 해내야 했던 일을 거침없이 해냈던 범가너에게 어쩌면 대리만족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MLB Scouting Reports" 사이트에서 범가너는 류현진보다 한 단계 더 높은 65점으로 평가되었습니다. 평가 점수로 보면 류현진은 60점으로 3선발 그룹에 끼어있고 범가너는 65점으로 2~3선발 그룹과 올스타 후보 등급에 올라 있었습니다. 얼마 전 그 사이트에서 범가너의 스카우팅 리포트가 업데이트 되었는데요, 무려 10점이나 뛰어올라 75점이 되었습니다. 최고 점수 80점[각주:1] 밑이 75점인데요, 이제 범가너를 사이영상 후보로 분류하고 있네요. 


김형준 기자의 "범가너의 공, 왜 치지 못하나?"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글을 요약하자면 범가너의 디셉션이 상상을 초월해 타자들이 공을 치지 못한다는 찬양 기사입니다. 좀 더 기사를 풀어쓰면 범가너는 투수판을 3루 쪽으로 밟고 내딛는 오른쪽 발은 1루쪽으로 향합니다. 범가너는 공을 허리 뒤에서 보여줬다가 뒤통수에 감춘 후 공을 던지는 딜리버리를 가져갑니다. 범가너의 팔다리가 길어 실제 구속보다 약간의 상승효과를 가져다줍니다. 매디슨 범가너의 디셉션 동영상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매디슨 범가너의 디셉션 동영상 

공을 보여줬다가 다시 뒤통수에 숨겼다가 갑자기 나온다.
디셉션보다 더 중요한 건 범가너의 1회다. 범가너는 1회만 잘 넘기면 호투할 확률이 높다.



범가너의 투구 동작을 보면 LG 외인 투수로 뛰었던 벤자민 주키치가 생각나기도 하는데요, 범가너의 디셉션(Deception, 숨김) 동작이 시즌 내내 통했을까요? 글쎄요. 범가너는 4월 4.25 ERA를 기록했고 또 7월 4.95 ERA로 더 좋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범가너의 디셉션은 언제나 한결같았습니다. 범가너의 디셉션은 상수(Constant)로 봐야합니다. 범가너의 디셉션이 장점으로 주목받지만 그의 포스트시즌 호투를 설명하기에는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못 만졌던 다른 다리를 만지러 가 보겠습니다. 


범가너의 슬라이디와 커터가 이 글의 주제인데요, 범가너는 슬라이더를 던질까요? 아니면 커터를 던질까요? MLB.com 게임데이에서는 범가너의 공을 슬라이더로 분류하고 있고, PITCH/fx를 다루는 브룩스베이스볼에서는 커터로 다룹니다. 글쓴이가 즐겨 찾는 사이트 중에서 범가너의 그 공을 슬라이더로 보는 사이트가 4곳이었고, 커터로 보는 사이트는 앞서 언급한 브룩스베이스볼과 위키피디아로 2곳이 있었습니다. 슬라이더로 보는 곳이 우세해 보이는 것 같은데요, 과연 누구 말이 맞을까요?


구종이 헷갈릴 때는 선수 본인에게 물어보는 게 최고입니다. 2014년 9월 23일 범가너는 다저스한테 6실점하며 혼쭐이 났습니다. 그날 경기에서 범가너는 푸이그에게 몸에 맞는 볼을 허용했어요. 범가너는 예전에 푸이그에게 홈런 맞은 일을 문제 삼았습니다. 두 사건이 연루되어 범가너는 해명해야 했어요. 그때 범가너는 커터를 던지려고 했는데 실수로 몸에 맞았다고 합니다. 해당 기사를 살펴보겠습니다. 


2014년 9월 24일 기사

Bumgarner said that in trying to throw a cutter, he pulled the ball across and it hit Puig.


2014년 10월 11일 기사

MLB Gameday says it's a slider. PITCHf/x says it's a cutter. Bumgarner says it's both, sort of.


2014년 10월 21일 기사

“I had a gut feeling he would be aggressive,” Bumgarner said. “So I just threw him a cutter."


범가너는 자신의 공을 커터라고 표현하기도 했고, 또 다른 기사에서는 커터와 슬라이더 둘 다 던진다고 이야기했네요. 범가너가 어떤 그립을 쥐고 던지는지만 알면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범가너는 패스트볼 그립에서 약간 빗겨서 그립을 잡고 있는 것 보니 영락없는 커터 그립입니다. 류현진의 고속 슬라이더 그립과는 확연히 다르네요. 커쇼와 류현진의 그립은 같은데요, 범가너는 그들의 그립과 다른 커터 그립으로 던지고 있습니다. 


범가너 커터 그립 Bumgarner Cutter Grip

범가너 커터 그립 Bumgarner Cutter Grip



류현진 고속 슬라이더 그립 (왼손 기준), 사진 출처: 이영미 칼럼

류현진 고속 슬라이더 그립 (왼손 기준), 사진 출처: 이영미 칼럼



커쇼 슬라이더 그립 Kershaw Slider Grip

커쇼 슬라이더 그립 Kershaw Slider Grip

류현진의 슬라이더 그립을 쥐고 던지는 모션을 하면 커쇼 슬라이더 그립과 같아진다.



자이언츠를 3번이나 우승 시킨 포수 버스터 포지가 매디슨 범가너의 커터/슬라이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입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포수 버스터 포지 인터뷰

그건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범가너는 다른 방법으로 공을 던집니다. 그래서 양방향으로 가죠. 그런 점은 당연히 좋죠. 왼손 투수가 던지는 슬라이더는 오른손 타자에게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왼손 선발 투수가 슬라이더로 지배하는 게 어렵습니다. 오른손 타자에게는 쉬운 먹잇감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대다수 상대 팀 감독은 오른손 타자를 라인업에 쌓아 둡니다. 


대조적으로 커터는 심지어 하드 슬라이더처럼 슬라이더 그립과 스핀과 움직임을 보일지라도 오른손 타자에게 덜 취약합니다. 그래서 오른손 타자에게 더 많이 사용하죠. 그런 의미에서 범가너가 던지는 공이 분류되어 않은 불명확한 공이라 마음에 듭니다. 


그것을 뭐라고 부르든지 간에 범가너는 그 공으로 대단히 효과적인 투구를 했습니다. 범가너는 순수한 의미에서 슬라이더 또는 커터를 던지는 투수가 아닙니다. 범가너처럼 다양한 구종을 가지고 있는 투수에게는 중요한 부분이죠. 커터/슬라이더의 2/3정도는 스트라이크로 들어갔어요. 왼손 타자 상대로 그 구종은 오른손 타자에게 더 큰 수평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같은 선상에서 떨어지면서 말이죠. 


왼손 타자에게 슬라이더 오른손 타자에게 커터 이런 이론은 필요 없습니다. 범가너는 양쪽 타자에게 두 가지 공을 모두 던지니까요. 범가너는 속도를 줄이기도 하고 높이기도 합니다. 오프스피드 피칭에 능합니다. 또 던졌던 투구를 바탕으로 상대 타자의 스윙을 읽고 적절히 조절해 냅니다.



매디슨 범가너 커터 동영상


정리하면 범가너는 커터 그립을 쥐고 슬라이더처럼 공을 던집니다. 공의 움직임은 커쇼나 류현진의 고속 슬라이더처럼 홈 플레이트 앞에서 커팅되는 움직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왼손 투수 류현진, 커쇼, 범가너의 슬라이더를 서로 비교해 볼까요? 


2014년 포스트시즌 PITCH/fx 비교

류현진 / 슬라이더 / 구속 88.2 / 수직 5.55 / 수평 -1.57 / 회전각 201 / 회전수 1,169 rpm

범가너 / 커라이더 / 구속 86.9 / 수직 3.61 / 수평 -0.68 / 회전각 190 / 회전수   751 rpm 

커   쇼 / 슬라이더 / 구속 87.7 / 수직 4.07 / 수평 -3.34 / 회전각 221 / 회전수 1,071 rpm


범가너가 던지는 커터와 슬라이더는 저 안에서는 구분되고 있지 않습니다. 범가너가 던지는 정체불명의 슬라이더와 커터는 수평 움직임만 달라서 모아두면 수평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를 들어 커터의 수평 움직임이 +2, 슬라이더의 수평 움직임이 -2라고 가정하고 커터 10개와 슬라이더 10개를 던졌다면 결국 수평 움직임은 0가 됩니다. 재분류가 필요해 보이네요. 범가너의 커트/슬라이더를 다음과 같이 분류해보았습니다. 


범가너 구종 구분 PITCH/fx (구속과 회전수, 수직 움직임이 같다고 가정, 수평, 회전각만 수정)

범가너 / 커터       / 구속 86.9 / 수직 3.61 / 수평   1.6 / 회전각 162 / 회전수   751 rpm 

범가너 / 슬라이더 / 구속 86.9 / 수직 3.61 / 수평 -2.5 / 회전각 200 / 회전수   751 rpm 



Madison Bumgarner Pitch/fx cutter slider spin angle direction


매디슨 범가너 구종 회전각 비교, 커브는 패스트볼 반대

범가너의 커터와 슬라이더는 약 40도 정도 차이나기 때문에 같은 공으로 분류할 수 없다.



MLB.com 게임데이에서 범가너가 연속으로 던진 3개의 공이 모두 슬라이더로 기재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범가너는 첫 번째 공은 커터를 던졌고 두 번째 공은 슬라이더, 세 번째 공을 커터로 섞어 던졌습니다. 범가너는 아주 미묘하게 타자의 타이밍을 뺏고 정타가 나오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었습니다. 두 구종의 수평 움직임은 3인치 이상 차이 납니다. 


타자 입장에서는 범가너가 던지는 투심 패스트볼, 포심 패스트볼, 커터, 고속 슬라이더에 가끔 던지는 체인지업까지 5가지를 구분해야 하니 실투성 공이 나와도 미묘한 차이 때문에 정타가 나오기 힘든 구조입니다. 이론상 이야기일 뿐 다저스 타자들은 범가너 공을 잘만 치는데 말이죠. 요즘 범가너 팬이 엄청 늘었으니까 논란을 피해가야겠네요. 다저스가 10월에 가을 범가너를 만났으면 또 모를 일입니다. 


범가너의 슬라이더/커터가 커쇼의 슬라이더에 비해서 강력하지 못했지만 패스트볼에서는 강력함을 보여줬네요. 범가너의 패스트볼이 .184이고 슬라이더/커터가 .264입니다. 커쇼의 패스트볼 구위는 작년과 거의 다를바 없는데요, 피안타율은 .227에서 .254로 올랐습니다. 아마 타자들이 카운트 초반에 커쇼의 패스트볼을 집중적으로 노린 것으로 보이네요. 커쇼의 슬라이더는 작년 .198에서 .149로 대폭 낮아졌습니다. 


포스트시즌에서 범가너가 잘 던졌던 이유를 살펴보면 뛰어났던 제구력도 있고 영리했던 배터리의 볼 배합도 있었고 AT&T 구장과 카우프먼[각주:2] 구장의 덕도 보았고 앞서 언급한 디셉션도 있고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중 베일에 싸였던 메디슨 범가너의 슬라이더를 분해하였고 그 속에 커터와 슬라이더가 공존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범가너가 던지는 구종을 세분하면 투심, 포심, 커터,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브 총 6가지 구종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서두에 던진 물음에 대한 답을 하면서 이 글을 마칠까 합니다. 범가너는 슬라이더도 던지고 커터도 던집니다. 커터와 슬라이더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슬라이더를 택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커터보다는 슬라이더의 움직임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상 베일에 쌓인 범가너의 슬라이더와 커터의 비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지겨울 것 같아서 깊게 파고 들지 않고 끝냈는데요, 범가너의 커터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더 필요하신 분만 아래의 글을 참조하세요.


범가너의 커터는 전형적인 커터 그립으로 던지지만, 뉴욕 양키스에서 은퇴한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나 LA 다저스 마무리 켄리 젠슨이 던지는 그런 전형적인 커터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습니다. 전형적인 커터의 움직임은 패스트볼과 거의 비슷한데 옆으로 휘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범가너의 커터는 슬라이더처럼 수직 움직임이 강합니다. 특이한 것은 왼손 투수가 가지는 커터의 수평 움직임과는 반대로 움직입니다. 


6가지 구종을 던지는 왼손 투수가 있다고 가정하고 수평 움직임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커브: -6, 슬라이더:-4, 커터: -2, 포심: 1, 투심: 5, 체인지업: 6 

범가너  커브 -5.6 슬라이더:-2.5, 커터: 1.6,  포심: 5, 투심: 7.5, 체인지업: 9


보통 투수들에 비하면 범가너의 구종은 모두 한칸씩 오른쪽으로 움직인 것처럼 보입니다. 범가너가 던지는 포심 패스트볼은 투심 패스트볼 움직임을 보이고 커터는 포심 패스트볼와 유사한 수평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네요. 커터의 수직 움직임까지 합하면 포심 패스트볼에서 속도가 줄어든 체인지업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범가너가 슬라이더는 커터 혹은 고속 슬라이더와 움직임을 보이고 있네요.


[Copyright ⓒ BaseBallGE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1. 스카우팅 점수 80점을 받았던 투수는 클레이튼 커쇼, 데이빗 프라이스, 맷 하비, 저스틴 벌랜더, 스테판 스트라스버그, 펠리스 에르난데스가 있다. [본문으로]
  2. 카우프먼 구장은 메이저리그에서 외야가 가장 넓은 구장 중 하나이다. [본문으로]